몽골 여행을 다녀왔습니다. 오래전부터 가 보고 싶었던 나라였는데, 어렸을 때 읽었던 ‘어린 왕자’를 시작으로 ‘잉글리쉬 페이션트’를 읽으며 키운 사막에 대한 동경이 컸습니다. 그러다 몇 년 전 ‘맑은 타미르강’이라는 몽골 대하소설을 읽고 애틋한 마음이 더 커졌지요. 중국으로부터 독립하고 사회주의 국가가 되는 근현대사를 비극적으로 살아낸 유목민, 에르덴의 일생이 사실적으로 그려져 있는데, 열강에 시달리는 약소국의 설움, 무능력한 정치인으로 인해 갈수록 피폐해지는 민초들의 일상, 이념의 갈등과 대립으로 자행되는 무고한 희생 등이 우리나라 역사와 다르지 않았습니다. 지금 몽골은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궁금했습니다.
오랫동안 친교한 지인 부부 2쌍과 함께 도착한 칭기즈칸 공항에서 현지 가이드를 만났습니다. 능숙한 한국어에 외모까지 한국인과 흡사한 청년 에르데는 5박 6일 동안 몽골이 처음인 우리와 늘 함께했습니다. 몽골의 대자연은 과연 듣던 대로 경이로웠습니다. 지평선에서 지고 뜨는 해와 달, 머리 바로 위에 지붕처럼 떠오른 북두칠성과 지면 위로 펼쳐진 별들, 그리고 언제나 드넓은 초원과 그 위에 한가로운 몽골의 5대 가축, 낙타, 말, 소, 염소, 양들은 보는 것만으로도 힐링이 되었습니다. 무엇보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건 몽골 사람이었습니다. 가이드, 에르데와 기사, 푸제는 아직 30대 청년이었지만 어린아이와 같은 순박함과 노인 같은 여유로움으로 우리가 안심하고 여행을 충분히 즐길 수 있게 해 주었습니다.
볼일이 급한 승객을 위해 잠시 멈춰 선 초원에서 에르데는 어느새 작은 도마뱀을 잡아 손바닥에 얹어 주었습니다. 몽골에선 도마뱀까지 순해서 그 부드러운 발바닥이 주는 느낌이 아직도 기억납니다. 여행 막바지 테를지 숲에서 말을 타고 식당에서 허르헉을 먹었는데, 처음 식당을 들어설 때 진동하는 양 누린내에 놀라고 접시에 담긴 양갈비 크기에 두 번 놀랐지요. 과연 먹을 수 있을까? 하던 차에 푸제가 칼로 양고기를 발라주기 시작했습니다. 어린아이 입에서 쏙 들어갈 만큼 작게 썰어 준 양고기와 감자는 부드럽고 뒷맛이 고소했습니다. 마당에 나오자 아기 양과 염소가 놀고 있었습니다. 달아나는 아기 양을 푸제가 몸을 날려 잡더니 이내 제 품 안에 안겨 주었습니다. 몽글몽글 털이 수북한 양의 등에 얼굴을 파묻고 사진을 찍었습니다. 마당에서 단체 사진을 찍으려고 일행이 모이니 어느새 독수리 조련사가 독수리를 팔에 얹고 다가옵니다. 덕분에 모두 축제처럼 양팔을 높이 들고 소리치며 콩콩 뛰며 인생샷을 남겼습니다.
200km 넘는 거리의 비포장도로를 달리느라 차가 상해도 푸제는 인상 한 번 찡그리지 않고 언제나 노래를 흥얼거리며 운전했습니다. 울란바토르 시내의 도로 사정은 초원보다 더 열악해서 줄지어 가는 좁은 차선에 무시로 끼어드는 차량 때문에 짜증이 날 만도 한데, 싱긋 웃고 마는 푸제를 보며 우린 ‘귀요미’라는 별명을 붙여 주었지요.
생소한 만큼 궁금한 점도 많아 수시로 질문을 던질 때마다 에르데는 언제나 다정하게 대답해 주었습니다. 유목민의 아들로 가축과 유목 생활에 대해 모르는 게 없던 에르데는 자신은 비록 도시에서 살고 있지만 고향인 초원이 있어 몽골이 좋다고 했습니다. 그곳에선 자유롭고 평화로울 수 있다고요. 푸제에 대한 배려도 에르데의 남다른 점이었습니다. 게르 식당에서 아침, 저녁으로 함께 식사할 때마다 한국어를 전혀 못 하는 푸제가 소외되지 않게 우리들이 하는 이야기를 몽골어로 통역해 주고 다시 몽골어를 한국어로 말하느라 식사를 제대로 하지 못하곤 했지요. 다함 없는 그의 평온함과 여유로움은 그가 나고 자란 초원에서 받은 선물인 듯했습니다.
여행을 하면 미처 몰랐던 나를 만난다고 하지요. 전 이번 여행에서 종류를 가리지 않고 모든 동물을 사랑하는 절 발견했습니다. 그리고 자유롭고 평화롭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만나 작은 일에도 조급한 저를 돌아볼 수 있었습니다. 몽골에서 찍은 수백 장 사진보다 더 값지고 빛나는 별 하나 안고 돌아왔습니다.
함께성장인문학연구원 수석 강사 차경숙 드림
K People Focus 차경숙 칼럼니스트 (ueber35@naver.com)
(함께성장인문학연구원 수석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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