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세 시, 바다는 아직 어둡다

황혼의 삶

노인과 석양


냄비 바닥에 눌어붙은 어제의 찌개를 긁어낸다. 국물은 하룻밤 사이 짙어져 있고, 거기에 라면을 넣고 만두를 흐드러지게 풀어 넣으면 부엌은 금세 김으로 뿌예진다. 혼자 뜨는 밥 한술이란 게 이토록 단출하고도 든든할 줄, 젊었을 적엔 미처 몰랐다. 반찬이랄 것도 없이 어제 먹다 남은 몇 가지를 그대로 상에 올린다. 아내는 이미 출근하고 없는 집, 수저 부딪는 소리만이 유일한 대화 상대다.

 

<이미지: AI image.파이튼>

서두르지 않는다. 서두를 이유가 없다. 시간을 가늠해 옷을 걸치고 강화도로 차를 몬다. 창을 열면 짠내 섞인 바람이 밀려들고, 갯벌은 썰물에 몸을 드러낸 채 반질반질 빛난다. 갈매기 울음이 멀리서 끊어질 듯 이어진다. 나는 그 바다 앞에 오래 서 있는다. 무엇을 보러 가는 것인지조차 분명히 답할 수 없지만, 그 바다는 매번 다른 얼굴로 나를 맞아준다.

 

그러다가도 아내의 퇴근 시간이 다가오면 몸이 먼저 안다. 서둘러 집으로 돌아와 씻고, 미뤄둔 설거지를 마저 정리한다. 고무장갑 낀 손끝에 닿는 물의 온도, 그릇이 서로 부딪는 짧고 맑은 소리들이 하루의 마지막 정돈처럼 느껴진다. 지친 얼굴로 문을 여는 아내를 보면 나는 얼른 먼저 말을 던진다.

 

"나는 저녁 먹었다." 거짓말도 아니고 온전한 참말도 아닌 그 한마디로, 나는 그녀의 몫을 조금 덜어낸다. 사랑이란 것이 나이가 들수록 이렇게 사소한 문장 하나로 오그라드는구나 싶다.

 

문제는 밤이다. 잠은 이제 나를 오래 붙들어두지 않는다. 발걸음 하나에도 아내가 깰까 조심스러워, 나는 그림자처럼 일어나 냉장고 문을 연다. 허기는 있는데 마땅한 것이 없다. 며칠 전 사둔 하이볼을 꺼내 잔에 채운다. 탄산이 올라오는 소리, 얼음이 유리에 부딪는 짧은 마찰음이 고요한 집 안에서 유난히 크게 들린다. 과자 부스러기를 손에 쥐고 책상 모서리에 걸터앉아 한 모금씩 음미한다. 쓰고도 시원한 그 맛이 이 새벽의 유일한 위안이다.

 

시계는 세 시를 넘어가고, 시간은 붙잡을 새도 없이 속절없이 흘러간다. 마치 오래된 악연처럼 매일 밤 같은 자리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다가, 붙잡으려 하면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간다. 소리 죽인 텔레비전을 켠다. 화면은 움직이는데 아무 말도 들리지 않는 그 무음의 풍경을, 나는 공허하게 바라본다. 그러다 창밖이 서서히 밝아온다. 먼 동이 트는 기척을 느끼면, 나는 하던 일을 조용히 마무리하고 거실 소파 침대에 몸을 눕힌다. 아내가 일어날 시간이니까.

 

이렇게 또 하루가 저물고 내일이 온다. 달라지는 것은 별로 없고, 의식은 조금씩 흐려져 간다. 갈구하는 희망은 좀처럼 제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다. 그래도 나는 펜을 놓지 않는다. 언젠가는 될지 몰라도, 이 회상과 기억들이 적어도 나와 가까운 벗들의 손에 작은 책자로 들려지는 날을 그려본다. 그 희망 하나를 붙잡고 오늘도 나는 내일을 꿈꾸며, 강화도의 일출을 기다리듯 저 바다를 바라보고 있다.


-파이튼


작성 2026.08.20 07:13 수정 2026.08.20 0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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